풍문처럼 떠도는 생은 없다고 믿는다

허공에 한번 피었던 것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말하자면 우리가 어젯밤 귀를 맞대고 들었던 어느 섬나라 재즈 가수의 노래와 그 술집을 가득 메웠던 웃음소리들 말하자면 우리가 서로에게 던진 캐치볼 같은 고백과 가까스로 세이프 한 역전 주자처럼 뿌듯하게 부푼 마음들 이것들이 하늘로 올라가 더러는 백색왜성이 되고 더러는 붉은 울음을 긴 꼬리로 흘리며 이 땅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는 생각 이런 상상마저 우주 한쪽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느끼는 밤이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국의 여자 귀신을 믿게 되는 것이다

 

  필리핀의 한 낡은 호텔에는 여귀가 산다 언제부터 그가 끄물거리는 복도의 전구 빛을 양탄자 삼아 떠돌았는지 알 수 없다 잃어버린 온기를 찾는 것인지 외로움이 깊으면 겁이 되는 법인지 거미줄에 걸린 양 이 행성에서 체크아웃하지 못하고 이방인의 곁을 맴돈다 "수음으로 시간을 달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"라고 속삭여주거나 "무명 극단의 '나무 1'이 되고 싶다"라고 일기를 적는 이방인의 겨드랑이를 밤 내 데워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중에 피어난 상처들에게 별자리의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땅과 하늘을 오가는 바람의 따뜻한 혈맥

 

  너는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다

 

  풍문처럼 떠도는 생은 없다고 믿는다

 

이현호, 매음녀를 기억하는 밤 - 부동은 또다른 흔들림을 위한 단잠에 불과할 뿐

 

이 시의 부재는 이연주의 「신인의 말」(『작가세계』1991년 가을호 별권)에서 인용되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