영원할 순 없겠지만, 이게 더 나은 것 같아. 이렇게 사는 게.

나비야.

언젠가 너한테 물었잖아. 넌 왜 별칭을 나비로 했느냐고. 네가 말했지. 나비는 세상 모든 이름 없는 고양이들의 이름이라고. 그냥 길 가는 고양이에게 나비야, 하고 부르는 목소리들이 좋아서 나비라고 했다고. 화를 내면서, 악을 쓰면서 나비야, 나비야 라고 하진 않잖아, 라고. 그래서 나도 너를 부를 때 나비야, 나비야, 하고 어쩐지 다정하게 불렀던 것 같아.

나비 너는 내가 행복하게 살 거라고 했지.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. 마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사람처럼 확신을 담아서 말했지.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어. 너는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상상하지 못할 거야. 그 사실이 항상 기쁨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.

 

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구른다.

 

언젠가 네가 한 말을 난 종종 떠올렸어. 영원히 천천히 굴러가는 공을 생각했어. 그 꾸준함을 상상했어.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려보면 쓸쓸해지더라.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여서. 그래도 우린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구나.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,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거지. 영원할 순 없겠지만, 이게 더 나은 것 같아. 이렇게 사는 게.

사람이란 신기하지.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.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잇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.

 

너희가 내게 줬던 시간과 마음을, 나는 잊을 수 없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야. 잘 지내.

 

최은영, 모래로 지은 집